李 “핵추진 잠수함 허용을… 현재론 北-中수역 잠수함 추적 제한”
신규진 기자
2025.10.30. 오전 3:06
[경주 APEC] 정상회담 모두발언서 트럼프에 요청
“핵추진 연료 공급받을 수 있게 해달라”
핵연료인 저농축 우라늄 확보 관건
위성락 “트럼프도 韓역량 확대 공감”
29일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특별연설을 하기 위해 전용 리무진인 ‘더 비스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경주=홍진환 기자 j
29일 김해국제공항으로 입국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 특별연설을 하기 위해 전용 리무진인 ‘더 비스트’를 타고 이동하고 있다. 경주=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핵추진 잠수함의 연료를 우리가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 달라.”
이재명 대통령은 29일 한미 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전에 충분히 자세한 설명을 해 드리지 못해 약간의 오해가 있는 것 같다. 우리가 핵무기를 적재한 잠수함을 만들겠다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8월 첫 정상회담 비공개 확대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연료 공급을 허용해 달라고 요청한 사실을 이례적으로 공개하며 핵추진 잠수함 도입 의지를 강조한 것. 미국의 동맹 현대화 요구에 따라 이 대통령이 국방비 인상 등 자체 방위 능력을 강화하겠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그동안 한국의 숙원 사업이었지만 미국 반대로 추진하지 못했던 핵추진 잠수함 카드를 전략적으로 꺼내 든 것으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회담에서 북한의 핵추진 잠수함 건조 역량 강화 등을 거론하며 한국의 핵잠 능력 필요성에 공감한 만큼 향후 한미 간 후속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 핵연료인 저농축우라늄 확보가 관건
이 대통령이 언급한 핵추진 잠수함은 핵무기를 싣고 다니는 전략핵잠수함(SSBN)이 아니라 원자력을 동력으로 사용하되 재래식 탄두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을 탑재한 SSN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이 운용하는 디젤 엔진 기반 잠수함보다 잠항 능력이 압도적으로 뛰어나다.
한국은 3000t급 잠수함 건조는 물론 소형원자로 개발 등 SSN 건조에 필요한 기술적 여건은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관건은 소형원자로의 연료인 농축도 20% 이하 저농축우라늄을 확보하는 것이다. 한미 원자력 협정은 핵물질의 군사적 전용을 금지하고 있다. 잠수함 전문가인 문근식 한양대 공공정책대학원 특임교수는 “우라늄을 우리가 농축하든 미국이나 제3국에서 사오든 미국의 동의 없인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SSN 개발을 빠르게 추진할 수 있도록 트럼프 대통령의 결단을 요구한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현 한미 원자력 협정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전제로 하는 만큼 SSN 연료로 저농축우라늄을 확보하려면 이 원자력 협정 개정뿐만 아니라 군용 핵연료에 국한한 추가적인 별도의 협정이 필요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한미 원자력 협정도 손을 봐야 할 것”이라며 “핵연료는 군사적 목적에 쓰이는데 기존 원자력 협정은 군사적 목적엔 적용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만 2017년 11월 트럼프 1기 행정부 당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 SSN 도입을 거론해 긍정적인 답을 이끌어 냈으나 후속 논의는 진척되지 않았다. 2020년 9월에도 김현종 국가안보실 2차장이 SSN 개발 계획을 설명하고 핵 연료 공급을 요청했지만 미국은 비확산 원칙을 내세우며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은 중국 견제 일환으로 호주에 ‘오커스(AUKUS·호주 영국 미국) 동맹’을 통해 핵잠 보유를 지원하고 있다. 일본도 최근 핵잠 도입 검토에 나서겠다는 뜻을 밝힌 상황이다.
● 원자력 농축·재처리 권한 확대 필요성 공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한국 공군 F-16 전투기 두 대와 미국 공군 F-16 전투기 2대가 호위하고 있다. 사진 출처 백악관X원본보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 전용기 에어포스원을 한국 공군 F-16 전투기 두 대와 미국 공군 F-16 전투기 2대가 호위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날 “디젤 잠수함은 잠항 능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북한이나 중국 측 잠수함에 대한 추적 활동에 제한이 있다”고 했다. 핵추진 잠수함 도입 이유로 중국의 위협을 거론한 건 이례적이다. 미국을 설득하기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집중하고 있는 중국 견제를 위해 핵추진 잠수함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연료 공급을 허용해 주시면 저희가 저희 기술로 재래식 무기를 탑재한 잠수함을 여러 척 건조, 한반도 해역의 방어 활동을 하면 미군의 부담도 줄어들 것”이라고도 했다.
다만 대통령실은 “특정 국가의 잠수함을 지칭한 것이 아니다”라며 “중국 방향의 우리 해역 인근에서 출몰하는 잠수함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해명했다.
한미가 8월 정상회담 전후 우라늄 농축 및 사용후 핵연료 재처리 권한을 확대하기로 의견을 모은 가운데 이 대통령은 회담에서 “실질적 협의가 진척되도록 지시해 달라”면서 원자력 협정 개정 작업에 착수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위 실장은 회담 후 브리핑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에 공감하면서 한국의 진전된 역량을 토대로 원자력 등 핵심전략산업 분야에서 더 큰 협력 기회를 모색해 나가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구체적으로 진전시켜 나가기 위해선 실무선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에 정상 차원에서 관심을 가져주십사 말씀드린 것이고 동의가 있었다”고 했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