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안전성에 군인 처우 개선 시급
공작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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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3.12 11:05
낮은 급여·직업안정성에 지원율 급감… 군인 처우 개선 시급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전까지 러시아군은 세계 2위 전력을 가진 강군으로 평가받았다. 전쟁 발발 1년이 지난 지금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들 정도로 형편없는 군대라는 조롱을 받고 있다. 러시아군은 보유 중이던 첨단무기 상당수를 우크라이나군에 빼앗기거나 파괴당해 이제 옛 소련 시절 구식 무기를 들고 인해전술이나 펴는 실정이다.
전쟁 발발 전까지 러시아는 모든 면에서 우크라이나를 압도하는 듯했다. 병력 규모나 무기의 질적 수준은 물론, 전반적 국력에서도 양국 차이는 극명했다. 그렇기에 누구도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와 대등하게 싸우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러시아가 압도적 힘의 우위로 우크라이나를 찍어 눌러 고작 며칠이면 항복을 받아낼 것이라는 예상이 우세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우크라이나군은 각지에서 러시아군을 격파하며 전쟁을 우세하게 이끌고 있다.
초급간부 무능에 러시아군 비(非)전투 손실↑
러시아를 패배로 내몰고 있는 요인은 우크라이나군뿐 아니라, 러시아군 자체에도 있다. 개전 초부터 러시아 일선 부대는 몇 가지 심각한 문제점을 보였다. 가장 큰 문제는 군의 핵심 인적자원인 간부의 역량이 대단히 형편없다는 점이었다. 러시아군의 대다수 간부는 전투 경험은 물론, 실전적 훈련 경험이 없다시피 했다. 그간 '했다 치고, 있다 치고, 된다 치고' 방식으로 부대를 편성해 훈련하던 초급장교들은 실전 상황에서 적절한 지휘 조치를 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지기 일쑤였다.
러시아군 간부는 대부분 능력뿐 아니라 도덕성도 없다. 전투에서 패해 자기네 부대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어도 '이겼다 치고' 식의 허위 보고서를 올리는 것이다. 허위 보고를 한 상당수 간부가 거꾸로 '전공'을 인정받아 진급까지 했다. 2월 러시아군 상장(한국군의 중장급)으로 진급해 동부군관구 사령관이 된 루스탐 무라도프 장군이 대표 사례다. 그는 부흘레다르 전투에서 2개 여단을 보기 좋게 잃고도 허위 승전보를 올려 진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작전에 실패해도 보고서만 잘 쓰면 된다'는 최악의 선례를 남긴 셈이다.
초급장교단의 능력 부족을 보완해줘야 할 러시아군 부사관 계층은 어떨까. 이들은 병사를 돌보기보다 공금과 물자를 빼돌리는 데 혈안이다. 장교는 대부분 한 부대·보직에서 기껏해야 1~2년간 근무하기 마련이다. 부사관은 한 보직을 오랫동안 수행한 경험과 노하우로 초급장교의 부족함을 채우는 대단히 중요한 존재다. 그러나 러시아 부사관들은 책임감과 전문성 모두 부족한 형편이다. 개전 초 땅이 진흙탕으로 변하는 '라스푸티차' 현상에도 러시아 부사관들은 병사들의 참호족(침족병)이나 동상을 막기 위한 기본 조치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했다. 그 결과 러시아군은 막대한 비(非)전투 손실을 입었다. 전투가 벌어지면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는 소대장과 중대장 옆에서 부사관들도 우왕좌왕하는 등 무능하긴 마찬가지였다. 초급간부의 실정이 이럴진대 병사는 오죽하겠는가.
국군 초급간부 시스템 난맥상
2월 28일 충북 괴산군 육군학생군사학교에서 학군장교 통합임관식이 열렸다. [육군 제공]
한국군으로 치면 위관급 장교, 하사·중사 등 부사관에 해당되는 초급간부는 군대를 실질적으로 움직이는 신경망과도 같은 존재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소대장·중대장이나 대대급 제대의 실무장교, 부소대장이나 반장, 행정보급관 등 부대를 실제로 움직이는 최일선 간부들이다. 수뇌부에 사관학교·해외 유학파 출신 엘리트가 있어도 신경망이라 할 초급간부가 제 역할을 못 하면 군대는 제대로 싸울 수 없다. 다시 말해 초급간부를 정예화하지 못한 군대는 우크라이나 전장에서 러시아군이 보여준 추태를 똑같이 연출할 가능성이 크다.
초급간부 정예화는 한국군이 오래전부터 부르짖어온 과제다. 초급간부를 정예화하려면 양성 및 보수교육 과정의 선진화도 대단히 중요하지만, 이보다 먼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초급간부가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직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동기 부여가 그것이다. 이를 위해선 초급간부의 직업 안정성과 그에 맞는 급여를 보장해야 한다. 또한 이들이 명예롭게 복무할 수 있도록 정부와 사회가 각별히 신경 쓸 필요가 있다. 구체적으론 먹고살 걱정 없는 근무 환경, 노력과 희생에 걸맞은 금전적 보상, 그리고 사회 구성원들의 인정과 감사에서 비롯되는 명예 말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져야 초급간부에게 강도 높은 훈련과 전문성, 책임감을 요구할 수 있다. 또한 우수한 자원이 군 간부에 지원하게끔 유도할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대한민국 국군의 초급간부 시스템은 실패했다고 볼 수밖에 없다. 더 큰 문제는 초급간부 제도 운영의 난맥상을 군의 자체적 노력만으론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군이 어찌할 수 없는 재량 밖 문제는 바로 국민 인식과 정치권의 대군관(對軍觀)이다. 대한민국은 제복 입은 이들의 희생과 헌신으로 6·25전쟁이라는 국난을 이겨냈다. 그들이 세계 최악 독재정권인 북한의 위협에 맞서 나라를 지켜준 덕분에 한강의 기적을 일구고 오늘날 번영을 구가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회 전반에 군인을 '군바리' '집 지키는 개' 등으로 비하하는 풍토가 만연하다. 군인의 희생과 헌신을 당연히 여기고 그들에게 감사와 존경을 표하는 것을 어색해하는 풍조마저 있다.
이런 그릇된 인식을 고치는 데 앞장서야 할 정치인은 어떤가. 상당수 정치인은 군을 국가안보 달성의 근간이 아닌, '표 장사' 대상으로 여기기 일쑤다. 그래서인지 정치권에서는 백지 상태인 신병을 쓸 만한 전투원으로 만드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복무 기간이 얼마인지 고심조차 하지 않는다. 선거 때마다 선심 쓰듯 의무복무 기간 단축을 부르짖고, 병사 월급 인상을 노래 후렴구처럼 반복한다. 그래야 수십만 병사와 그 가족의 표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기술 발전에 따라 무기체계와 전술은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병사는 대부분 자신에게 주어진 무기 사용법을 온전히 익히기도 전 전역한다.
정상적 국가라면 군 복무를 공동체와 국민에 대한 헌신으로 규정한다. 따라서 민간기업 직원 또는 공무원 채용 시 전역 군인에게 가산점을 주거나 우선 채용하는 게 상식이다. 그러나 이 나라 정치인들은 그러한 보상조차 성(性) 차별이라며 폐지했다. 그 대신인지, 병사 월급 인상이라는 수단을 쓰고 있다. 인생에서 가장 황금 같은 20대 초반에 헌신과 희생을 강요당하는 청년들에게 푼돈을 쥐어주며 생색을 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에게 나라를 지키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요구하는 건 무리다.
‘차이' 무시한 채 '형평성' 매몰
병사들에게 전문성과 책임감을 기대하기 어렵다면 그들을 이끄는 간부층이라도 탄탄해야 한다. 정치인에게 표가 되지 않기 때문일까, 군 간부는 관심 밖 존재가 됐다. 병사 월급은 매년 가파르게 올랐지만 간부 월급은 동결되거나 소폭 인상되는 데 그쳤다. 군 간부는 일반 공무원에 비해 업무 강도가 높은 편이다. 상당수가 격오지에서 생활해야 한다. 그럼에도 수적으로 몇 배나 많은 일반 공무원 표를 의식해서인지, 군 간부 급여 인상과 처우 개선은 늘 지지부진하다. 군인은 본질적으로 유사시 목숨을 바쳐야 하는 전사(戰士)다. 평시에도 살상무기를 다뤄 언제 어떤 사고를 당할지 모른다. 이런 조건을 무시한 채 군인과 일반 공무원의 '형평성'만 외치는 게 바람직할까.
일반직 9급 공무원과 하사의 기본급은 2023년 기준 월 177만800원으로 동일하다. 직장에 출퇴근하고 일과가 끝나면 자유로운 일상을 누리는 일반 공무원과 달리, 직업군인은 근무지에서 멀리 벗어날 수 없다. 근무지·보직에 따라 이동의 자유를 사실상 박탈당하는 경우도 적잖다. 그럼에도 형평성이라는 명목으로 이들은 같은 급여를 받는다. 일각에선 직업군인은 본봉이 적은 대신 여러 수당이 일반 공무원보다 훨씬 많다고 주장한다. 군인도 공무원이기 때문에 인사혁신처가 규정한 한도에서만 수당을 받을 수 있다. 규정 수당을 최대치로 받는다고 가정해도 '9급 1호봉'과 '하사 1호봉'의 월 수령액 차이는 20만 원 정도다.
일반 공무원의 노고를 폄하하자는 게 결코 아니다. 다만 엄중한 안보 상황에서 특수 업무에 종사하는 군인의 처우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일반직 공무원과 비교했을 때 근무 강도는 높고 급여는 비슷한데, 계급 정년으로 직업 안정성이 불안한 데가 사회적 존중마저 못 받는다면 누가 군문에 들어서려 하겠는가. 초급간부의 처지는 특히 심각하다. 휘하 병력의 신상을 책임져야 하는 초급간부의 월급이 병사와 별 차이가 없는 실정이다. 게다가 의무복무 기간은 일반 병사보다 훨씬 길고 전역 후 재취업도 막막한데 누가 초급간부에 도전하겠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장교·부사관을 막론하고 군 간부 지원자의 질적 수준이 갈수록 떨어지는 것 아닌가 우려된다. 일례로 대다수 대학에선 우수자원의 학생군사교육단(ROTC)·학사장교 지원율이 빠르게 추락하고 있다.
초급간부 처우 개선은 월급 몇 푼 올려준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국방부가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도 없다. 정부와 사회가 다 같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중대한 과제다. 직업 특수성을 감안해 일반직 공무원보다 많은 급여를 지급하는 방안을 진지하게 검토해야 한다. 그뿐 아니라 우수한 자원이 군 간부에 지원하도록 유도하고, 이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갖고 임무에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근무 여건을 만들어줘야 한다.
군인 존중 않는 사회는 곧 붕괴
그런 점에서 미국을 비롯한 주요 선진국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대다수 선진국에선 우수 인재가 군 간부에 지원하도록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직원 채용 과정에서 군 간부 출신에게 가산점을 부여한다. 민간기업이 전역 군인을 채용하면 세제 혜택을 주는 등 제도도 시행하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군인은 목숨 바쳐 자신이 속한 공동체를 수호하는 이들이다. 이들에 대한 존경과 감사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당연한 조치가 없는 사회에선 누구도 희생과 헌신이 요구되는 군복을 입지 않으려 할 것이다. 군인이 존중받지 못하는 사회는 머잖아 무너진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한국 위정자들은 지금 우크라이나 땅에서 벌어지는 '세계 2위 군대'의 졸전을 교훈 삼아야 한다. 군 간부 처우 개선과 질적 수준 향상을 위한 실질적 대안을 고민해야 할 때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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