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인들 사라진 도시, 주민들 웃음도 사라졌다

공개게시판

군인들 사라진 도시, 주민들 웃음도 사라졌다

공작새 0 9 14:01
군인들 사라진 도시, 주민들 웃음도 사라졌다
[사단급 군부대 해체]
내달 1일 육군 28사단도 해체… 盧 때 시작 '부대 감축' 마무리

파주·연천·화천=고유찬 기자
입력 2025.11.28. 00:55

지난 23일 찾은 경기 파주시 적성면 28사단 신병교육대 인근은 적막했다. 한때 신병들로 붐볐던 이곳은 철골만 남았다. ‘생각하는 전투원 육성’이라고 적힌 간판은 사라졌고, 훈련장은 텅 비어 있었다. 지난해 말 이곳 신병교육대가 문을 닫으면서 정문과 위병소는 모두 폐쇄됐다. 인근 버스정류장 이름도 ‘신병교육대’에서 ‘적암3마을’로 바뀌었다.

부대 앞 커피숍은 낮인데도 불이 꺼져 있었다. 자물쇠가 채워진 고깃집은 먼지와 거미줄로 가득했다. 간판 없는 구멍 가게를 운영하는 박모(77)씨는 “장날처럼 북적였는데 작년 말부터는 거리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고 했다.

경기도 동두천에 본부를 두고 연천·파주 지역을 책임지던 1만여 명 규모 육군 제28보병사단(무적태풍부대)이 내달 1일 해체식을 연다. 28사단 해체로 2005년 노무현 정부의 ‘국방개혁 2020’으로 시작된 육군 부대 감축이 20년 만에 마무리된다. 정부는 병역 자원 감소에 대응해 육군 부대 숫자는 줄이는 대신 전력을 정예화하고 해·공군을 증강해왔다. 그 결과로 사단급 이상 부대는 2006년 59곳에서 2025년 11월 기준 42곳으로 줄었다. 28사단이 해체되면 사단은 41곳으로 준다.

28사단 예하 부대들이 작년 말부터 차례로 폐쇄하면서, 인근 지역 상권은 무너졌다. 연천군 신서면의 한 군부대 부지는 텅 비어 있었다. 군부대 의존도가 높았던 상서면 상권은 직격탄을 맞았다. 음식점, PC방 등 수십 곳이 줄줄이 폐업했다. 백반집을 운영하는 신정숙(58)씨는 “부대가 옮겨가자 손님이 3분의 1로 줄었다. 인건비도 못 건진 지 벌써 석 달이 넘었다”고 했다. 연천 전곡읍사무소 인근에서 만난 육군 A 원사는 “몇 달 전 소속이 28사단에서 25사단으로 바뀌어 부대 마크도 바꿔 달았다”며 “맡아야 할 전방 철책 경계가 배로 늘어나면서 경제 침체는 물론 안보 공백을 걱정하는 주민도 많다”고 했다.

3년 전 해체된 27사단(이기자부대)이 있던 강원도 화천군 상황은 더 심각했다. 옛 27사단 정문엔 ‘국방부 소관 국유재산, 출입 금지’라고 적힌 경고문만 덜렁 붙어 있었고, 한쪽 철문은 힘없이 쓰러져 있었다. 붉은색 ‘이기자’ 마크는 빗물과 바람에 씻겨 희미해졌다. 주민 신모(73)씨는 “부대 부지가 폐허로 방치되면서 고라니와 들개의 서식지가 돼 밤마다 짐승들이 울부짖는다”고 했다.

해 질 무렵 사단 본부가 있었던 화천 사창리를 돌아보니 상가의 절반 가까이가 문을 닫았다. 문을 연 곳도 손님이 거의 없었다. 상가번영회장 이해복(67)씨는 “장병이 5000명 줄면서 매출도 60~70% 떨어졌다”며 “상권이 죽으니 군인들도 춘천으로 나가고, 상권이 더 죽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고 했다.

육군 부대 해체는 부대가 있던 지역 생활 전반을 바꿔놓고 있었다. 사창리가 있는 사내면의 유일한 영화관 ‘토마토시네마’는 관객이 없어 스크린을 켜지 못하는 날이 잦다. 직원 안남희(60)씨는 “손님이 예전의 3분의 1 수준으로 줄어, 평일엔 관객이 한 명도 없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사내면 버스터미널 내 커피점은 폐업했고 서울로 가는 시외버스도 기존 13편에서 11편으로 줄었다. 주민 이숙자(78)씨는 “서울 병원을 자주 오가야 하는데 배차 간격이 너무 길어졌다”고 했다.

화천 실내초등학교 학생 수는 2022년 52명에서 2025년 25명으로 반 토막이 났다. 북쪽 다목초는 전교생이 12명밖에 안 돼 폐교 위기에 몰렸다. 신승경 다목초 교무부장은 “방과 후 수업 전액 지원, 해외 수학여행, 무료 셔틀버스 등을 제공하겠다고 했지만 떠나는 아이들을 잡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했다.

화천군은 27사단이 있던 사내면 일대에 ‘특화 산업 단지’를 조성해 지역 경제 회복을 노리고 있다. 국방부에 따르면 올 상반기 기준 강원도 내 미활용 군용지는 230만㎡(약 69만5700평)로 축구장 327개 면적이다. 그러나 국방부는 군사 기밀이란 이유로 미활용 군용지의 정확한 위치와 면적 등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강원도청 관계자는 “정확한 위치나 면적에 대한 정보가 없어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기 어렵고, 소유권을 넘겨받는 것도 각종 행정 절차로 막힐 때가 많다”고 했다.

영문 기사 보기 (View English Article)

Comments

최근글


새댓글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