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무장공비 침투 당시 이승복군 일가족 4명 살해
조선일보 "공산당이 싫어요" 탓에 이군 살해 특종 보도
훗날 해당 발언 진위와 조선일보 현장 취재 여하에 의혹
관련자 허위사실 유포로 기소됐으나 대법원 판단은 미지근
[이데일리 전재욱 기자] 1968년 12월9일 ‘울진-삼척 무장공비’ 잔당이 강원도 평창군 이승복군(당시 10세)의 집을 습격했다. 일이 틀어져 북으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이군의 집에 몸을 숨긴 것이다. 이군의 일가족 4명은 당시 무장 공비에게 살해됐다.
한 초등학교에 세워진 이승복군 동상(사진=연합뉴스)
조선일보는 1968년 12월11일 자 신문에 ‘“공산당이 싫어요” 어린 항거 입 찢어’ 제목의 기사를 특종 보도했다. 기사는 ‘최후 발악하는 잔비(공비 잔당)는 외딴 집에 침입해 약탈행위를 감행한 후 북괴 선전을 하려다가 열 살짜리 꼬마(이군)가 우리는 공산당이 싫다고 하자 돌멩이로 어린이의 입을 찢는 등 일가족 4명을 무참히 죽이고 2명에게 중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는 내용이었다.
그해 1월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 시도에 이어 연말 대규모 공비 침투 사건까지 겹치면서 국가 안보가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조선일보 보도는 북한 정권과 공비의 잔악함을 알리는 기폭제가 됐다.
그날 이후 이군은 반공 교육의 표상이 됐다. 전국 상당수 초등학교 교내에 이승복군 동상이 들어섰고, 도덕 교과서에 이군이 등장했다. 1975년 평창군에 이승복 반공관이 건립되고, 1982년 이승복 기념관으로 증설됐다. 전두환은 대통령 재임 시절인 1982년 3월 이군에게 국민훈장 동백장을 추서했다.
조선일보 보도에 대한 의혹도 끊이지 않았다. 조선일보가 특종보도한 대로 이군이 실제로 “우리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발언했는지가 의혹 제기의 핵심이었다. 이른바 ‘이승복 작문’ 사건이었다.
김종배 미디어오늘 기자가 1992년 계간지 저널리즘 가을호에 게재한 ‘이승복 신화는 이렇게 조작됐다’는 글이 대표적이다. 김주언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1998년 ‘오보 전시회’를 열어 해당 기사를 전시했다. 조선일보는 1998년 11월 해당 의혹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하고 두 사람을 검찰에 고소했다.
검찰은 1999년 7월 김주언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과 김종배 미디어오늘 기자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 공소장에는 ‘조선일보 소속 강인원 기자와 노형옥 사진기자가 이군이 살해된 이튿날인 1968년 12월10일 현장을 취재하고, 이군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공비에게 말했다가 일가족 4명이 살해당한 사실을 취재한 것이 당시 현장 사진과 주민, 군경 관계자 조사를 통해 확인됐다’고 적혔다.
대법원은 2006년 11월 김종배씨에게 무죄를, 김주언 신문발전위 사무총장(판결 당시 직책)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2년을 확정했다. 김종배씨는 오보를 주장할 만한 이유가 있었고, 김주언씨는 충분한 확인 없이 전시회를 연 점이 유죄의 근거였다. 이 판결을 기반으로 김주언씨가 조선일보에 500만원을 지급하라는 민사상 손해배상 판결도 2009년 2월 확정됐다. 조선일보는 “진실이 가려졌다”고 기사를 냈다.
이를 두고 한국기자협회는 성명을 내고 “대법원은 조선일보 기자가 현장에 있었는지 여부와 현장 기자들이 조선일보 기자를 보지 못했다는 증언의 진위, 조선일보 기사가 작문 기사라고 언급했다가 번복한 사례가 있었다는 사실 등에 납득할만한 설명을 하지 못했다”며 “무엇 때문에 형사재판을 8년이나 끌었는지 의문으로 남는다”고 했다.
전재욱 (
imfew@edaily.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