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당시 ''미국보다 먼저 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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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전쟁당시 ''미국보다 먼저 달려

공작새 0 7 12.18 23:32
한국 전쟁당시 ''미국보다 먼저 달려와'' 서울을 지켰다는 이 '나라'
2025. 12. 18.

개전 4일 만에 파병 결정한 나라

한국전쟁은 1950년 6월 25일 발발했고, 영국은 UN 안보리 결의에 즉각 호응해 개전 4일 만에 한국 파병 방침을 정했습니다. 이후 전쟁 기간 동안 약 6만 명에 가까운 영국 군인이 한국전에 참전해 미군 다음 규모의 전력을 투입했습니다.

영국군은 초기에는 해군 전력 위주로, 이후에는 지상군·공군까지 단계적으로 파병하며 한반도 전역에서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이는 미국조차 준비가 채 되지 않았던 시점에, ‘먼 나라 전쟁’에 피를 흘리겠다고 나선 결단이었습니다.

임진강 전투, 600명이 3만 중공군 막아 세웠다

1951년 4월 임진강 전투에서 영국 제29여단, 특히 글로스터셔(Gloucestershire) 연대 1대대는 약 600명 규모로 중공군 약 2만7천 명과 맞서 싸웠습니다. 중공군은 서울 재점령을 노리고 대규모 공세를 펼쳤고, 이 방어선이 무너지면 서울 2차 함락이 현실이 될 상황이었습니다.

글로스터셔 대대는 포위·고립 속에서도 2~3일간 고지(이른바 ‘글로스터 힐’)를 사수하며 중공군에 최소 1만 명 이상 사상자를 입힌 것으로 추정됩니다. 결국 대부분 포로가 되거나 전사했지만, 이 저항 덕분에 서울 방면 방어선이 재정비될 시간을 벌어 수도가 다시 떨어지는 참극을 막았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엄청난 피의 대가: 1,078명 전사, 2,674명 부상

영국은 한국전쟁에서 공식 집계 기준 1,078명이 전사하고 2,674명이 부상했으며, 실종·포로까지 포함하면 1,000명 이상이 더 희생됐습니다. 전체적으로 약 6만 명에 가까운 영국군이 참전했음을 고려하면, 상당히 높은 손실률입니다.

이 숫자는 ‘먼 나라의 전쟁’에 뛰어든 영국이 치른 피의 대가를 보여줍니다. 영국군 참전은 단순한 형식적 연대가 아니라, 실제 전장에서 최전방을 지키며 한국군·미군과 함께 피를 흘린 동맹의 시작이었습니다.

전쟁 초반, 영국 해군이 한반도 해상전의 중추 역할

육군뿐 아니라 영국 해군도 한반도 주변 해역에서 작전의 핵심을 담당했습니다. 영국 항공모함과 순양함·구축함들은 해상 봉쇄와 해안 포격, 상륙 지원, 항로 보호 임무를 수행하며 한국 전선 유지에 기여했습니다.

특히 전쟁 초기 미 해군 일부 전력이 다른 지역에 분산돼 있던 시기, 영국 해군은 유엔 해군 전력의 중요한 축으로서 서해·동해 작전에 참여했습니다. 이처럼 영국은 육·해·공 전 영역에 걸쳐 실질적인 군사 지원을 제공했습니다.

정전 후에도 1993년까지 한국에 남아 있던 영국군

1953년 휴전 후에도 영국은 곧바로 철수하지 않고, 영연방군 일원으로 상당 기간 한반도에 주둔했습니다. 일부 영국 지상군과 공군·해군 전력이 냉전기 내내 순환 배치되며, 1990년대 초까지 한국 방위 협력에 참여했습니다.

공식적으로는 1993년까지 UN군 사령부 및 연합 훈련·감시 활동에 영국이 관여했습니다. 이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떠나지 않은 동맹’으로서의 상징성이 큽니다.

2025년에도 이어지는 한·영 안보 동맹

오늘날에도 영국은 인도·태평양 중견 강국으로서 한국과 전략 협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2025년 9월, 영국 최신 항공모함 HMS 프린스 오브 웨일스가 부산 인근 해역에 전개돼 한국 해군과 연합훈련을 실시했습니다.

당시 항모 전단에는 영국군 약 2,500명이 탑승했으며, 이후 호주·일본·한국을 잇는 8개월 인도·태평양 전개로 최대 4,500명 규모로 증강 운용될 계획이었습니다. 영국 정부는 이 훈련이 “한국과의 전략적 동맹 강화, 인도·태평양 안보 기여 의지의 표현”이라고 강조했습니다.

‘개전 4일 만에 달려온 나라’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

한국전쟁은 종종 ‘잊힌 전쟁’이라 불리지만, 영국 사회에서는 지금도 임진강 전투와 한국전 참전이 중요한 군사·역사 교육의 한 축입니다. 반대로 한국에서는 미국에 비해 영국의 공헌이 상대적으로 덜 알려져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개전 4일 만에 파병을 결단하고, 서울을 지키기 위해 임진강 고지에서 끝까지 버틴 영국군의 희생은 오늘 한국이 존재하는 기반 중 하나입니다. 2025년 현재까지 이어지는 한·영 연합훈련과 항모 전개 역시, 그때 맺어진 피의 동맹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보여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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