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공작원들에 대한 빛바랜 보훈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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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수공작원들에 대한 빛바랜 보훈의식

공작새 0 183 07.16 09:41
(사진) 당시, 여의도 국가보훈처앞, 특수임무연합회원들이 일방적으로 단체를 승인한 보훈차장의 잘못을 항의하기 위해 연합회장단이 보훈처장 면담한다는 정보를 알고 소속단체원들이 자발적으로 전국에서 몰려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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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침투전(대공정보전)과 관련된 정보는  국가적으로 예민하고 또한 관련 법률이 제정되기 이전에는 정책기관 상호간에  군사보안법률에 의해 정보공유와 관련협조가 제한된 상태였음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관계기관들은 법률이 제정되고 공포된 후에 입법 취지에 따른 법률적용을 적극 활용하지 않았고, 예민하게 분류된 사안에 관련자들이 사실확인을 위해 절실하게 도움이 필요로 할때 매번 수동적인 자세로 일관하였다.
관계법이 제정되기 전에 위로보상을 시행하면서 위로금 항목에 모두가 임무수행자로 명시되어 당사자들을 착각하게 하여 큰 혼란을 일으키게 했던 것 역시 원인이라고 본다.

당시, 북한군의 대남도발에 맞선 특수공작원 출신으로서 죽을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난 덤으로 사는 인생이란 생각에 국가를 위한 전우들의 헌신이 일거에 수면 아래로 묻혀선 않된다는 신념으로 최초로 연합체를 결성하였고, 이를 이끌면서 역량의 한계도 뼈져리게 느겼다.
법률이 제정되고 공포되기까지 주변의 어떠한 지원없었고 부상자들로 구성되었기에 재정상태가 어려워 많은 우여곡절을 겪어왔다.

이 무렵, 외상후스트레스와 공황장애를 동시에 겪고 있었음을 뒤늦게 알게된 터라, 수년간 애써왔던 활동에 초기에 단체설립 과정은 입법취지를 지킬거라 믿었던 국가보훈처가 보훈의식이 결여된 보훈차장의 과욕으로 인해 예상치 않은 비참한 결과로 그 충격을 견딜 수가 없었으나 돌이켜보면 정신력으로 견디어 낸 듯하다.

국가보훈처 외에도 또다른 원인을 되집어 보면,

첫째,  구성원이 국가유공상이자들이기에 외부단체들이 선배들 단체는 이미 국가유공자가 된 단체로서 관련법에 해택을 받는다며, 자신들은 따로 가자는 잘못된 인식이 만연해 있었다.

둘째,  단체활동에 운영재정이 없는데다 미약한 조직력에 역량있는 구성원들은 앞에 나서는 것을 꺼려해 활동에 한계도 한몫 했었다.

셋째,  초기활동 구성원들은 대부분 공적이 뚜렸했으나 그렀지 못한 훈련받은 후배(70%)들이 선배단체에 위축감을 느끼고 선배단체에 대한 오해와 편견으로 극구 반대하는 현상발생.

넷째,  국방부와 국가보훈처가 특수임무수행은 예민한 군사보안 사항과 관계되어 관련기관 상호간 정보공유가 제한되어, 설립 초기의 입법취지는 특별한 희생을 전제로 하는 법률이 당초의 입법취지를 양쪽 정책기관들이 무색하게 한 원인제공 역활이 첫 단추를 잘못끼우게 된 것이라 생각한다.

그 동안 국가보훈처 소관 단체지원법에 잘못된 인식이 바뀌지 않은 관련자들은 어떤 형태라도 비참한 결과를 맛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단체활동은 모든 면에서 너무 힘이 들었다는 솔직한 심중을 십수년이 지나간 일을 토로해 본다.
이처럼 취약한 단체 조직력과 정보에 관련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여러 측면에서 불이익을 일방적으로 받게 된 사례들이 상당부분 재론의 여지없이 잠재되어 버렸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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